자기소개
시골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머리를 묶어주셨습니다. 학교는 집에서 참 멀어서 떠올리기만 해도 숨이 찼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내 긴 머리를 싹둑 자르셨고, 나는 그게 잘릴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고는 겁이 나서 울었습니다. 자르다 만 머리 그대로 학교에 갔습니다. 방과 후에 담임 선생님이 머리를 다시 반듯하게 잘라 주셨습니다. 할머니가 전화로 부탁하신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취미로 양봉을 하셨습니다. 종종 벌에 쏘였는데 이마에 쏘이면 눈이 부었습니다. 하루는 벌에 ‘또’ 쏘여서 눈이 부은 나를 보고 선생님이 조퇴를 시켜준 적이 있습니다.
집에 오면 고모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모는 내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다양한 장면을 위해 진달래 핀 산에도 가고, 손뼉을 치며 노래도 하고, 정자나무 위에도 올라갔습니다.
명절이면 도시에 사는 사촌 언니가 왔습니다. 언니는 책을 보거나 만화를 그렸습니다. 나는 그 옆에 누워 책 읽는 척을 했습니다. 한 페이지를 간신히 넘겼습니다. ‘산보’라는 단어를 보고 ‘뽀’로 끝나는 발음이 재미있어 여러 번 중얼거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도시로 이사했습니다. 할머니가 눈물 훔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새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전처럼 이 많은 전교생을 다 알고 지내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생각했습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서예 학원에 다니며 한글과 한자 정자 쓰기를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미술 수업도 하셨는데 붓에 물감을 잔뜩 묻혀 캔버스에 찍듯이 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내 꿈은 패션 디자이너와 피아니스트 사이를 오갔습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자 선생님은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학원에서 몇 달 동안 미술 수업을 받고 입시 미술 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학원에서 소묘와 수채화를 배웠습니다. 집에 이젤을 펴 놓고, 사과, 벽돌, 캔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학원 선생님은 인터넷으로도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뒤로 좋은 책을 찾아 책장에 꽂아두는 게 상자에 보물을 모으듯 소중한 일이었습니다. 상자에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선정한 책과 에곤 실레, 세잔, 고흐, 고갱, 한젬마, 은희경, 신경숙 등의 책이 있었습니다.
홍익대학교 판화과에 지원했습니다. 성적이 되는 범위에서 이름이 가장 근사한 학과를 선택했습니다. 입시를 마치고 학교에서 내려오며 우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양 수업에서 사진에 흥미를 느껴 늘 어깨에 필름 카메라를 메고 다녔습니다. 카메라를 메고 남산 회현 시민 아파트에 찾아가곤 했습니다. 관리실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 중에 스스로 점쟁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 집에 가보니 베란다에 정말 신당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오래된 흑백 놀이터에서 홀로 총천연색 사진 같던 아이가 그네 솜씨를 뽐내며 치마가 뒤집히도록 높이 오르는 걸 손뼉을 치며 바라보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디자인이 잘 된 책들이 눈에 띄어 판권 면을 보면 ‘끄레 디자인 서비시스’라고 되어 있는 것이 많았습니다. 한글로 ‘서비시스’라고 표기한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졸업 무렵 친구들과 단편 영화 한 편을 찍었습니다. 남자 배우는 오디션으로 선발했습니다. 커피 마시는 장면을 찍을 때 남자 배우가 커피를 마신 뒤 볼이 부푸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번 NG를 외쳤습니다. 컴퓨터로 편집한 영화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지금은 필름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어딘가에서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우고 돌보지 않아도 이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그것이 선명하게 책이었습니다. 서촌에 있는 한 출판사에서 지원해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지만, 꽤 그럴듯하게, 정직하고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책의 꼴을 만들어내는 나 자신에게 놀라기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 골목이나 갤러리를 구경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시장 조사 차 편집 주간과 교보문고에 다녀오는 길에 더 다양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어서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디자인 회사로 옮기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회사 한번 놀러 오십시오. 그럭저럭 괜찮은 우리 회사 커피도 마시고…”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끄레 어소시에이츠의 대표 최만수였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커피를 얻어 마시고 끄레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다른 날에는 끄레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호미 출판사의 대표 홍현숙과 함께 곱창전골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일하면서 서서히 알게 되었지만, 편견과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고 이성과 감성이 적절히 밴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끄레에서는 여러 출판사의 책과 전시 도록, 제품 패키지, 달력, 다이어리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저자의 원고를 중심으로 내용과 분위기에 집중하는 일은 (첫 독자여서이기도 하고) 늘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주제를 가리지 않게, 덧붙이는 대신 거둬들이고, 다져서, 그 바탕 위에 고유함을 부여하는 일이 어쩌면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힘든 일이 있어서 마우스로 고양이와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삐뚤삐뚤하고 어설프게 그려지더라도 마우스라는 도구는 좋은 핑계가 되었습니다. 종이에 손으로 직접 그릴 때보다 마음이 편했습니다. 판화에서 판이라는 매개체의 존재와 의도치 않게 생기기는 우연한 이득에 길들여진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늘 고맙게 받아들입니다.
세어 보니 10년 가까이 끄레에서 일했습니다. 좋은 사람들 덕에 오늘도 내일도 출근하며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만수와 홍현숙은 1년 간격으로 작고했습니다. 홍현숙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보니 분명 죽은 사람의 얼굴인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가장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