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이야기 1

다음 가임기 때 같이 시도해보자. 울었다. 내가 말했잖아 같이 하면 된다고.
네가 뱃 속에 있을 때 어머니는 너를 부정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른다. 그만 탯줄을 끊고 달아나지 못했던 아기는 이만큼이나 살아내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2024-04-15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삼킨 씨앗이 마음에서 자라 자궁으로 흘러들었다. 아기는 제 집으로 찾아간다. 나에게 집이 있었다. 매일 빈 집을 들고 다녔다. 아기는 길을 헤맸다. 아니면 헤매야 할 길을 알지 못했다. 엉뚱한 곳에 스며들었다가 다른 것과 뒤엉켰을지도 모른다. 가까스로 몸 밖으로 나왔으나 내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기는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살아간다.
2024-05-22


내 손에서 아기 손이 자란다.
손을 부벼 간지럽힌다. 움켜쥔다. 우리는 따뜻하다.
내 눈에서 아기 눈이 자란다.
우리는 고양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다. 우리는 선명하다.
2024-05-23


색을 기다린다. 내 몸에서 스스로 나오는 것 중 가장 선명한 색을. 양귀비 꽃 만큼이나 붉은, 외면하고 싶은 외침을. 토하듯 울컥하고 나와 그대로 버려지는 것을. 하얀 휴지에 스며들어 능청스러운 낯을 하고 나를 쳐다보는 것을. 주워 담을 수 있다면 입 안으로 집어넣어 삼키고 싶은. 다시는 이 세상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내 몸의 모든 구멍을 막아버릴 작정으로. 배를 둥둥 두드린다. 분명 쓸모가 있다고 속삭인다. 자칫 떠밀까 봐 오줌도 살살 눈다.
2024-06-25


오줌을 묻힌 테스트기를 건네고 자리를 떴다. 선명한 두 줄이 나와야한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두 줄인데? 두 줄이야!
붉은 줄 옆에 빈 자리를 보고 싶지 않아 일주일을 버텼다. 색을 기다렸다. 색이 보이면 아닌 거다. 빈 자리 대신 색을 보는 편이 나았다. 양귀비 대신 대추에 가까운 색이 몇 번 비쳤다. 곧 있으면 양귀비로 둔갑해 내 눈앞에서 꽃잎을 펼칠 거라 예상했다. 구홍이는 ‘착상혈’이라 했다.
빈 자리에 붉은
그보다 붉은 목단이 피어났다.
2024-07-02


아이는 내 몸 구석구석에서 나뭇가지를 물어와 둥지를 지었다. 둥그렇게 모양이 잘 잡혔다.
2024-07-03


길을 걸을 때도
고개를 들어 잎을 볼 때도
길가에 핀 산딸기를 보려 멈춰 섰을 때
웅크리고 잘 때
밥을 먹을 때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고양이를 쓰다듬을 때
혼자 있을 때
내 사소한 순간들과
아기가 함께 있다
화곡동의 가로수는 메타세콰이어란다
2024-07-06


아기가 0.47센치래
엄지와 검지를 모아 거의 닿을 듯한 틈을 만들었다
이만 한 거야
배에 그 손을 그대로 갖다 댔다
여기 어딘가 이 자그만 것이 뛰고 있단다
더 자란다면 다음번엔 콩콩 심장 뛰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두 개의 심장이 서로 불협화음을 내며 뛰는 모습을 떠올렸다
가끔은 두 소리가 우연찮게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때도 있겠지만
내가 콩닥콩닥 뛰면 콩과 닥 사이에 불안하게 혹은 당차게
콩닥 뒤로 소심하게 혹은 급하게 끼어드는 콩콩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2024-07-13


집중이 잘 안 된다. 점심으로 똠양꿍 쌀국수를 먹었다. 같이 들어 있던 말린 느타리 버섯과 양송이 버섯, 튀김, 완자는 덜어냈다. 기름지거나, 질겅거리며 습한 향이 나는 것은 당기지 않는다. 아삭, 사각, 시큼, 칼칼, 시원… 이런 단어와 맞는 음식을 먹고 싶다. 덥덥한 여름보다 날카로운 겨울 같은 음식을 먹고 싶다. 햇살보다 눈을 먹고 싶다. 헤헤 웃는 소리보다 깔깔 웃는 소리를 먹고 싶다. 쓰다듬는 것보다 꼬집는 것을 먹고 싶다. 비둘기 소리보다 참새 소리를 먹고 싶다. 어제보다 지금을 먹고 싶다. 고흐보다 뒤피를 먹고 싶다.
2024-07-15


아기가 엄마 하고 부르는 것도 아니어서
아니면 가끔 손을 내밀어 흔드는 것도 아니어서
배에 손을 올리고 빙글빙글 쓰다듬어 보아도
아직 아기가 없는 것 같다
강낭콩 크기만 하다는데 그럼 손가락 한마디보다도 작다.
2024-07-31


꿀렁 하고 오르락 내리락이 느껴졌다. 이번 것을 확실한 첫 태동이라 하련다.
구홍이에게도 손을 올려보라고 했다. 내가 느낄 때와 같은 시점에 어! 하고 놀란다.
응 맞아
그럼 살아 있는 거네
응 맞아
2024-10-09


꿈틀 꾸물렁 꿀렁 꾸룩 퉁퉁
오늘은 수시로 움직였다
이 정도의 강도와 횟수로 둥둥거리며
늘 뱃속에 있다면
슬플 일은 없겠다
2024-10-15


배가 안쪽 보다는 바깥 쪽이 살살 아프다. 핏줄이 끊어지는 느낌이다. 우에다 쇼지 전시를 보고 배를 안고 살살 내려왔다. 집으로 가서 왼쪽으로 돌아눕자. 요나고에 갔을 때 쇼지 전시관을 가보지 못해 아쉽다. 조만간에 가볼 수 있을지 아니면 더 훗날을 기약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모와 함께 가볼 수도 있겠지. 마침 대답하듯 꿈틀거린다.
2024-11-01

2024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