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아침을 함께 먹으러 온 부부가 있었다. 한 사람은 퉁퉁하고 목소리가 컸고, 한 사람은 마르고 턱수염이 있었다. 안 나오고 싶으면 말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알고 보니 남자가 들고 있는 전화기가 유튜브 촬영을 위한 거였다. 정신 언니의 다음 전시를 위해 여자가 해주는 여러 조언이 꽤 적절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여자는 똥을 눠야겠다며 서둘러 나섰다. 내일 점심에 자기네 집에서 점심을 하자고 초대했다.

집은 직접 지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곧장 가까이 가서 훑어보니 대략 눈에 익은 것들이다. 이름을 아는 건 블루스타펀과 다바나 고사리, 아레카 야자, 글로리오섬… 미리 준비해놓은 호박 빈대떡과 떡볶이, 정신 언니가 말아간 김밥을 노나 먹었다. 거의 다 먹었을 때 남자는 자리를 옮겨 피아노를 쳤다. 식탁에 남은 사람들은 음식을 조금 더 먹었다. 여자는 다 먹은 접시를 치우고 당근 케이크를 내왔다. 남자는 연주를 멈추고 식탁으로 돌아왔다. 정신 언니가 남자의 유튜브를 우연히 본 친구 얘기를 했다. 나는 흥미로워 하며 유튜브 채널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다. 듣고 보니 이미 알고 있던 거였다. 구홍이가 채널 주인이 뭐 하던 사람이라고 해서 놀랐었는데 그게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한페이지단편소설? 아, 맞아요, 그거! 순간 식탁 위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튀어올랐다. 거기 혹시 매일 일기 올리는 코너 있지 않았나요? 저도 거기 올렸는데. 대학생 때 기숙사에서 일기를 써서 올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반가움은 그리움으로 바뀌어갔다. 여자가 창간했다는 ’보일라‘라는 잡지도 함께 봤다. 여자가 내게 전공을 물었고 판화과였다고 하자 “왜 그림 안 그려요?” 하고 되물어왔다. 나는 책이 좋아서 그쪽일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그게 직업이 됐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여자와 남자를 검색해봤다. 여자의 인스타그램에는 오늘 함께 먹은 음식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구홍이가 기현이 선물한 필리핀 바나나칩에서 새우 맛이 나서 보니 새우깡이 들어 있더란 얘기를 했다. 황당해서 기현에게 물었다. 기현은 처음엔 의아해하다 아마 가족 중에 누군가가 새우깡을 먹고 빈 바나나칩 봉투에 넣은 거 같다고 했다. 나는 테레비에 나올 법한 일이라며 웃었다.

우연히 『디 에그』라는 단편소설을 읽었다. 대략 이해하기로는 세상에는 신과 나만 존재한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이 해석으로 조금 나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나예요. 당신은 나의 다른 모습일 뿐이예요. 당신을 미워하지 말아요. 내 앞에서 긴장하지 말아요. 당신은 환생한 나예요. 이번 생은 이런 모습으로 사는 거예요.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돼요.

2025년 3월 19일